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살수대첩 : 을지문덕 장군의 대승과 수나라의 멸망

by 라이프고 2023. 2. 16.

살수대첩 또는 청천강전투라고도 불리는 살수전투는 서기 612년 동북아 고구려-수 전쟁 때 벌어진 중요한 군사 교전이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와 양현안 장군이 이끄는 중국 수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a1

 

살수대첩의 배경

  • 7세기 초 수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영토를 확장하던 때, 한국 삼국의 하나인 고구려는 수나라에게 중대한 위협으로 여겨졌습니다. 서기 611년 수나라 양제(楊帝)가 대규모 고구려 침공을 시작하고 가장 신임하는 장군인 양현안(楊玄安)을 파견하여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수나라의 초기 공세를 격퇴하고 요강까지 몰아냈습니다.

 

살수대첩 전투 양상

  • 서기 612년, 수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 현대 만주의 살수강을 향해 진격하는 또 다른 침략을 시작했습니다. 수나라 군대는 보병과 기병을 포함해 약 30만 명으로 구성된 반면, 고구려 군대는 2만 명 정도로 훨씬 적었습니다.
  • 을지문덕 장군은 자신의 군대가 수적으로 열세임을 인식하고 중국군의 수적 우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수나라 군대가 건널 수 있는 좁고 얕은 통로를 만들기 위해 살수강을 가로지르는 임시변통의 댐을 건설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댐은 모래주머니, 바위, 나무줄기로 만들어졌으며 수나라 기병의 무게로 인해 무너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 살수강에 접근한 수나라 군대는 댐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댐이 무너지고 강둑이 풀리면서 중국군과 말을 물속으로 보냈습니다. 강둑에 숨어 있던 고구려군은 이에 기습하여 중국군을 압록강 쪽으로 밀어냈습니다.

 

살수대첩의 여파

  • 살수해전은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한 고구려에게 의미 있는 승리였습니다. 수나라 군대는 전투에서 100,000에서 300,000명의 군인과 말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 장군 Yang Xuangan은 패배로 수치를 당했고 나중에 Sui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613 CE에서 실패한 쿠데타를 이끌었습니다. 양제 역시 고구려 침공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서기 618년에 암살되어 수나라가 멸망했습니다.

a2

 

살수전투는 을지문덕 장군이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민족적 영웅으로 기억되는 등 한국 역사상 중요한 군사적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이 전투는 수나라의 동북아시아 정복 시도를 종식시키고 당나라의 부상을 위한 길을 닦았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댓글